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부모가 자녀를 향한 사랑을 표현할 때, 단순히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려는 자녀를 훈육하고, 따끔하게 책망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달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을 주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도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채워주실 때도 사랑이지만, 인생의 고난과 징계를 허락하실 때도 사랑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9)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 – 순종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순종’이라는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사랑 없이 순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랑 없는 순종 – 바리새인의 신앙
성경 속 바리새인들은 바로 사랑 없는 순종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누구보다 종교적 열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태복음 23:27)
그들의 순종은 외식이었고,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모양을 가졌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랑 없는 순종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모양이 아닌 마음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외적인 행동이나 형식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마음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사랑은 단순히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되며, 그 마음이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에 담긴 사랑의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날의 바리새인과 제자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은 성경 속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바리새인 같은 신앙인’은 존재합니다. 교회에 나와 봉사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면 결국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제자의 삶은 부족하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순종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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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순종으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삶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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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사랑으로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사랑에서 비롯될 때, 그 삶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또한 세상 가운데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게 됩니다.
맺음말
사랑은 모양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순종의 모양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진심을 보십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길이 아니라, 사랑으로 순종하는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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